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掩掩히 奄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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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점은 몰겠는데 도삱점 민상원장..
by gsdgg at 01/05 플라스틱이라고 썼어도 알아봤을.. by lynn麟 at 09/04 네, 정말 멋진 아저씨예요.+_+.. by lynn麟 at 02/03 멋지네요!! 읽어보고 싶은 욕구 급상승 by janny at 02/02 꺅. 완전 좋아요!!!! 전에부터 링.. by 가하 at 01/27 |
2007년 01월 18일
미용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옷과 구두, 가방과 귀걸이에 집착하면서 뷰티 살롱을 등한시한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할 수 있으나, 드라이를 제외하고 컷이나 펌을 위해 헤어샵을 가는 경우는 일 년에 두어 번 정도다. 이유는, 그닥 특별할 것 없이, 별로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고, 필요없는 것을 굳이 돈과 시간과 품을 팔아 무연한 고공에 삯을 지불해가며 쫓아다닐 만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다. 백은 옷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스타일과 브랜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아이템을 찾아다니고, 크리스찬 루부탱과 피에르 하디를 구하기 위해 온갖 해외구매대행 사이트를 뒤지다 못해 프랑스 현지 매장으로 직접 전화를 넣고, 예기치 못한 옷 자체의 사고 상황이든 지극히 변덕스러운 개인적 문제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엔 외출을 포기하며, 귀걸이가 그날 코스츔과 정확하게 매치되지 않는 날엔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보다 더 짜증스럽다 하면서, 왜 헤어샵은 필요없어 하는가? 정답은 옷과 구두, 가방과 귀걸이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미 옷이 그림같고, 귀걸이의 스팩이 눈길을 끌 만큼 엄청나고, 구두와 가방이 명품의 꼴을 갖추었다면 헤어스타일까지 화려할 필요가 없다. 그 지경에 머리까지 한껏 태가 나면, 그거야말로 저렴하고 미숙한 스타일의 생생한 현시가 되니까. 그렇다면, 또 이렇다. 뷰티 살롱의 헤어스타일이 항상 현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왜 헤어샵에서 가공된 머리를 갖추면 너무 화려해진다는 이유를 들며 필요없다 말하는가? 정답은, 내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화려하다. 화려한 여자다. 이것을 사치와 허영과 동의어로 놓겠다면 그 졸렬함을 굳이 정정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어찌됐든 그런 세간의 선입견과 동일 선상에서 내가 내보이는 진실이란, 나는, 치장한 차림새와는 무관하게 트레이닝복에 산발을 시켜놔도 화려하게 보이는 여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러니까, 타고난 본판이 그러하다고. 그래서 나는 옷과 가방과는 좀 다른 분야인 메이크업,에서는, 화장이란 무엇인지, 맑기도 하신 비누 세안 후 존슨즈베이비의 로션을 탁탁 두드리는 화장법에서 졸업하고 드라메르와 스위스퍼펙션의 어려운 기초 라인들을 외우고 샤넬과 디올도 화장품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선수 학습한 후 색조 화장에 입문한 그 몇 년 전부터, 0.1cm 이상의 파운데이션질은 이미 손가락질을 동반한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 지금의 유행시류, 즉 내츄럴 메이크업이란 찍어맞춘 명칭이 번들번들하게 대두된 현 시점까지 거의 맨얼굴에 가까운 투명 메이크업법을 고수한다. 나는 조금만 진한 립스틱을 바르거나, 조금만 흔적이 남는 아이섀도를 바르는 순간, 스트리트걸 내지는 프레쉬맨,으로 변모하니까. 내 얼굴은, 그 어떤 고급 브랜드의 색조 라인도 감당해내지 못한다. 심지어, 디올 본사에서 파견된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조차 전문가의 손길이 만들어내는 마술같은 차별성과 특별성을 강조하며 '화장하면 촌스러워지는 얼굴'이라는 내 설명을 '화장해서 예뻐지지 않는 여자 없다'라는 평생의 지론 아래 과감히 비웃으며 전문가적인 손길을 보탰다가, 결국 한 시간여의 노력 후의 결과물에 엄청난 당황 및 좌절감을 미처 숨기지조차ㅡ고객을 앞에 두고ㅡ 못했던 엄청난 전적이 있으시다. 그리고 나는, 애써 웃어보이며 집으로 돌아가 그 형형색색들을 열심히 지우고 또 지우고 도로 투명 메이크업을 하고 나가야했던 까닭에 나름 중요했던 자리에 한 시간이나 지각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니 나는 투명해야만 한다. 색조에 맛을 들이고 얼굴에까지 공을 들였다가는, 나는 애써 모은 온갖 시즌 컬렉션의 옷과 구두를 불사르고 산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이다. 나는 머리에까지 힘을 줄 필요가 없다. 물론, 뷰티 살롱에 간다고 해서 그것이 곧 미스코리아 사자 머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끝만 웨이브를 주는 러블릭펌이나, 가볍고 세련되게 층을 내주는 레이어드컷을 할 수도 있고, 사자 갈기를 만들어내는 기본세팅펌이라 할지라도 디자이너 선생님과 으쌰으쌰해서 롤의 크기나 펌제를 조절하여 얼마든지 가벼워질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살짝만 손을 대도 화려해지는 아이라고 누누이 얘기했다. 이 년에 한 번 꼴로 생머리에 싫증을 내고 펌을 하는데, 나는 펌이 약발을 받아 고고히 컬의 자태를 빛내는 세 달 정도는 옷에 완전히 힘을 빼고 다닌다. 그래야 겨우 고급이나 세련에 간신히 걸쳐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그냥 생머리를 길게 흩뿌리거나 하나로 완전히 틀어올리거나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화려하다. 또는 충분히 세련됐다. 그전에 옷과 가방과 구두, 그리고 스펙터클의 위용을 자랑하는 견적의 액세서리, 머리를 틀어올릴 때는 또 그만큼 특별난 스팩의 머리장식들이 이미 너무 화려하다. 그리고, 본판조차도. 나는 화려와 세련을 동시에 지켜내기 위해 정말 머리를 쥐어짜내야 한다. 화려하면서도 세련되기란 페미닌하면서 시크한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보통, 나는 매뉴얼을 지킨다. 어떤 옷을 살 때 그것과 맞는 나머지 아이템을 심사숙고해서 정해놓고, 그것을 고수ㅡ결론적으로 바로크 스타일이나 페미닌 룩으로 귀결된다ㅡ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템들의 가짓수가 뒷받침되야 가능한 일이지만, 몇년 동안의 컬렉션 수집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 블라우스에는 이 스커트, 그리고 이 슈즈, 이 백, 이 이어링. 정해놓은 한 가지 매뉴얼을 정확히 지킴과 동시에, 만나는 사람들과 입고 신고 들고 차는 내가 지겹지 않으려면 일년열두달삼백육십오일 사시사철 겹치지 않을 만큼의 가짓수로 무장된 옷장과 신발장과 가방, 액세서리 수납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래서, 이렇게 정해진 프로그램 하에서 나는 색조 화장품과 뷰티 살롱이 필요치 않다. 좀더 간단한 실례로 이해를 돕자면, 머릿결을 지키기 위해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르네 휘테르에 갖다바치는 일은 있어도, 이희나 라뷰티코아에 일 년에 오십만 원 이상은 헌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 년에 오십만 원이든 한 달에 오십만 원이든 오십만 원은 오십만 원이다. 어느 곳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오십만 원이 오만 원이 될 수도, 오백만 원이 될 수도 있다. 내 지론은, 좋지 않은 디자이너에게 오만 원짜리 펌을 열 번 해봐도 그 한 번이 이만 원의 엣지를 보인다면 한 번에 오십만 원짜리 펌을 할 지라도 그것이 오백만 원의 엣지를 가지는 것이 예의,이다. 그래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 즉 펌을 할 때와 펌이 거의 풀려나갈 시기쯤 되어 펌제의 화학 성분과 스타일링을 위한 빈번한 왁스 오남용으로 다 망가진 머릿결을 위해 볼륨헤어케어를 하는 두 번 정도, 혹은 펌을 하지 않는 해엔 정기검진과 같은 개념의 헤어케어와 컷을 위한 오십만 원쯤을 쓰기 위해 좋은 디자이너와 좋은 뷰티 살롱을 찾는다. 나는 정해놓은 매뉴얼을 고수하므로 유행에 민감할 필요가 없고, 필요까지 없는 헤어 부분에서는 더더욱 그렇기에 샵조차 유행의 물결에서 햇빛과 태풍을 맞는 청담과 압구정의 민감한 시류 바람에서 한발짝 물러설 수 있는 (그나마)다행스러운 상황 하에 있달 수 있다. 그래서 일 년 반을 이희에서 보냈고, 그 후 삼 년 반을 라뷰티코아에서 보냈는데, 이희에서 라뷰티코아로 옮긴 것은 그 당시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는 트렌드세터들 사이에서 라뷰티코아에서 쓰는 텍스춰가 꽤나 고급 천연 성분이란 이야기가 분분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전문가를 거쳐 확인을 끝내고, 머리카락의 결과 양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과감하게 미용실을 옮겼다. 현태 원장님의 고객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ㅡ그 당시 라뷰티코아는 세라마이드 펌제와 유명 디자이너들의 스카우트로 뜰 대로 떠 있었고, 특히 현 원장님의 인기는 헤어 디자이너계의 스텔라 맥카트니, 헤어샵계의 지현우에 버금가 있었다ㅡ를 서버의 실수와 디자이너의 고집으로 놓치고, 나는 딜라일라 안 선생님의 고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게 되었다. 이름만큼이나 과하게 예술가적 외양을 안팎으로 흘리고 다니는 안 선생님이 가위를 손가락에 걸치고 내 머리카락을 척척척척 날려가며 화려하게 손을 날리면, 양쪽에서 쉴새없이 입을 놀리는 도레미파솔라, 라ㅡ톤의 서버들에게 싫증이 날대로 나 입 자체를 다물고 있는 나조차, 선생님, 어디 가셔도 패션계쪽에 있다는 말 들으시겠어요,따위의 멘트를 날릴 수밖에 없을 만큼, 안 선생님한테서는 디자이너적인 기운이 바닥에 뚝뚝 떨어져 발에 채였다. 매끄러운 손놀림과 호화로운 동작들, 춤추듯 나긋나긋하고 유연한 걸음걸이에 비해 앙칼진 목소리와 뾰족한 얼굴 생김으로 묘하게 모순적이어서 더더욱 패션계 특유의 느낌이 있던 그 여자는 화려한 것을 매우 좋아했다. 본인의 표현대로 하자면, 조용한 화려함,이라고 했지 아마. 어쨌든 날 보자마자, 화려하게 생겼는데 촌스럽지 않다ㅡ사실 촌스럽지 않는 방법을 안다, 혹은 촌스럽지 않으려고 구는 노력이 가상하다,정도겠지만ㅡ면서 날 현 원장님한테서 뺏어올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중요한 자리를 위한 세미 업스타일이나 소소한 세트 드라이를 제외하곤 일 년에 두어 번밖에 고가의 혹은 장시간의 시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언제나 정확하게 내 얼굴과 이름과 스타일을 기억했고, 자신의 디자이너적 입지에 상처를 받지 않는 선에서 까다로운 내 스타일에 맞춰주기 위해 꽤 많은 신경을 썼으며, 내 표정과 코멘트에 일일이 반응하는 스타 디자이너답지 않은 친절함을 보였다. 샵의 입구도 아닌 계단 어귀까지 배웅을 했고, 그 모질고 앙앙한 하이소프라노의 목소리로 내 등뒤에서 예뻐죽겠다며 깔깔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름대로 자부심 있다고 써붙이고 다니는 내 스타일을 존중해서ㅡ사실 백화점과 헤어샵에 갈 때 제일 예쁘게 하고 가야한다라는 쓸데없는 나의 고집이 한몫하기도 했지만ㅡ 옷과 매치할 때의 헤어스타일링도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아침에 샴푸잉하고 나면 여간해서 머리에 손대지 않아 하려는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손이 안가도 멋이 사는 이지 롤 스타일을 함께 머리 맞대고 연구했고, 헤어샵에서만큼은 사근거리지 못하는 나에게서 애교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작년 즈음엔 드라이도 헤어스타일링도 귀찮아져 웬만하면 그냥 틀어올려버리는 헤어의 중세가 내게 도래하면서 가벼운 손질조차 하러 가지 않는ㅡ그러니 펌이나 컷은 더더욱ㅡ 시기가 굉장히 길어졌는데, 그 동안에 라뷰티코아는 잭의 콩나물이 보인 엄청난 성장보다 더욱 눈부신 속도로 자라나 우리 집 앞에 서초점을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도산 공원 근처에 건물 하나를 완전히 새로 올리고 도산점을 내놓았다. 그리고 안 선생님은 부원장으로 승급하여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래서 나도 디자이너 선생님을 따라 옮겨야한다,라는 수번의 전화와 문자에 시달렸다. 사실 사람들은 다니던 곳이 자리를 옮기면 아예 새로운 다른 곳으로 바꾸려는 성향이 있는데 그 일반적 경향은 내게도 여지없이 발휘되어서, 암흑의 시대를 맞이하여 뷰티 살롱을 다니지 않고 있는 것이었음에도 불구, 꼭 미용실의 이전으로 인해 헤어스타일링을 끊은 것 같은 도피 기제에 흠뻑 젖어 나는 내심 헤어샵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내 얄팍한 의리를 꿰뚫어본 부원장님은 개업 파티와 연말 파티 초대, 더하여 쿠폰과 서비스의 남발을 수화기 너머에서 끝없이 속삭였다. 물론, 품새를 위해 전화 자체는 부원장님의 전속 서버들이 대신하긴 했지만. 결국은 간간이 짜증을 부리거나 귀찮아하면서 그 달콤한 제안들을 뿌리쳤지만 그것 역시 순전히 내 게으름 때문이었지, 사실 일이 그쯤 되자 나는 헤어샵을 옮기는 것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접고 나는야안선생님고객,이란 정체성을 온전히 되찾은 상태였다. 어쨌든, 나의 소속과 상관없이, 부원장으로 승격함과 동시에 안그래도 정상의 끝에 간당하게 매달려있던 선생님의 커리어는 완전한 전성기를 맞아 꽃처럼 찬란하게 피어났다. 온스타일에서는 심심찮게 딜라일라 안의 패션팁이 흘러나왔고, 잡지에서는 어디를 펴나 선생님의 협찬 이름이 걸려있었으며, 한가인으로 대표되던 선생님 밑의 연예인 목록은 더욱더 길어졌다. 수없는 세미나와 학술 대회를 다니느라 자리를 자주 비웠고, 그만큼 휴가 기간도 길어졌다. 선생님의 일정은 재깍재깍 문자로 배달되었고, 급기야 예약 '가능' 시간대조차 따로 잡히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에 가까운 해외 로케 협찬이나 출장, 세계 대회 출전의 여파로 평일의 예약은 끝도 없었다. 그래서였다. 중세와 같은 어둠의 시대를 간신히 물리치고,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위해 예약을 잡은 것은. 개인적인 실수와 불성실로 인한 극도의 우울을 동반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몇며칠에 이어, 드디어 이러다가 자학의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따끔한 자각이 지각되자마자 자학의 감옥에만은 갇히기 싫은 방어 기제가 사풋사풋한 걸음걸이와 칼칼한 목소리의 어울리지 않는 조화로 변화와 발전의 앙상블을 온몸으로 흩뿌릴 것이 분명한 안 선생님의 새로운 둥지를 구경하는 것으로 신호탄을 알린 것이다. 그래서였다. 예약을 잡은 것은. 꽤 많이 밀려있는 예약들에 간신히 정해놓은 마음이 변덕내는 것을 물리치기 위해, 꽤 넉넉하게 시간을 남겨놓고 약속을 잡았다. 그날 펌하러 가는 거 잊어먹을까 걱정이 될 만큼 넉넉하게 시간을 벌려두고.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내일, 나름 꽤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일이 있기도 하고 해서 오늘 예약을 했다,라는 것은 결코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그냥, 안그래도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릴 수밖에 없는 우울의 원인을 극복하려는 것이어서, 나름 성실하게 내적인 부분을 완성해놓고 외양적인 면도 보수해낸다,는 참으로 꽤나 답지 않은 짓이었다고 보는 편이 좀더 적확한 표현이다. 그러나 정작 리허설 중엔 착하지만 멍청하고, 어눌한데 남을 성실히 배려하기까지 하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팀리더에 대한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 고운 마음새 완전히 팔아치우고 침묵의 시위를 잇던 와중에, 문자가 연이어 울렸다. 송신인은, 1004. 안미현부원장님좋도대체 밑도 끝도 없이. 나는 가벼운 짜증을 내며 버튼을 눌러댔다. 안미현은 또 누구냐. 게다가 1004,라니 응? 성과 지위로 파악되는 추측을 명확한 사실 관계로 바꾸기 위해 나는 전화번호부에서 'ㄹ'을 검색했다. 안내음과 함께 예약 담당자가 연결된다. 어쨌든 불의의 사고란다. 딜라일라 안 선생님의 실명이든 한국 이름이든, 어쨌든 안미현,이란 이름은 처음 듣는, 그저 죽음의 통보 앞에서 불친절한 침묵을 지키는 내게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고객분들께는 다른 선생님께 연결해드리고 있어요. 만약 소개받으신 분이 따로 없으시면, 저희 쪽에서 추천하시는 분으로 생각해보시겠어요? 저희가 예약을 못지키게 되서 기분 나쁘시죠...... 나중에 걸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돌아와, 나는 내일을 위한 리허설을 마저 했다. 정말 짜증이 난다. 죽음,에 대한 것은 정말 짜증스럽다. 어쨌든 내 목숨 자체가 트라우마인 나에게, 죽음, 아니 살아남는 것,은 정말 짜증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치부될 만한 인물의 죽음에는 눈도 깜박 않는 훈련을 꽤 오랜 시간 거쳐 진행해왔다. 고등학교 시절 논술 준비 때문에 꽤나 오래 붙어있었던 어떤 남자애, 졸업 후 일 년쯤 지나 벌어진 자살 사건에 나는 그 남자애가 삼 년 내내 말을 튼 유일한 여자애,라는 닉네임을 붙이고 있었음에도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일말의 동정도, 죽음에 대한 사유에 대한 궁금증도, 그 어느 것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어도 그의 죽음을 제보한 이의 꽤나 상세한 부연설명이 있었고, 동정하지 않아도 그런 나에 대한 수화기 너머로 가해지는 그치의 질책과 힐난이 있었으며,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어도 그 남자애와 말 한 번 터보지 않은 그 제보자와 그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연이어 전화로 연결된, 그 애와 말 한 번 섞지 않은 것으로는 따끔한 나의 질책자와 매한가지였던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참석 예정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내 무관심을 침묵으로 위장했고, 동정을 불허하는 가난한 내 강퍅함을 차가움으로 위장했다. 그 당시에 '쿨'이란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는지.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대학에 들어와 밤샘 술자리를 몇번 하고, 필기를 돌려보았으며, 서로 대출이 가능했고, 서툰 한국말에 대한 교정과 교습을 내게 간단하게 받았었고, 같은 새터조 동기이자 문화 학습이란 미명 하에 시덥잖은 친한 척을 주고받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일본인 교환 학생이란 타이틀 덕에 꽤 유명인사였던 동갑내기 남자아이가 소포모어로 승격하신 봄이 끝나고 반팔을 꺼낼 즈음하여 여자친구에게 헬맷을 넘겨주고 질주하다 여자친구는 가벼운 타박상으로 그치게 하고 자신은 즉사하도록, 마치 미리 알고 방치한 것만 같은 로맨틱한 시나리오로 변질 및 왜곡되어 전파되었던, 객기에 따른 오토바이 사고사에 대한 즉각적인 통보에도 미온적인 대처와 귀찮음을 동반한 가벼운 짜증섞인 무관심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것은, 죽어버린 그 아이들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치부'되'는 인물이라고, '정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죽어버린 그 순간부터. 그 전에는 아마, 삼 년 내내 말을 나눈 유일한 여자애,라는 닉네임과 시덥잖은 친한 척이 가능한 새터 동기,라는 타이틀에, 설마 가치는 두지 않았어도 아예 의미를 제거하는 정도까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기했듯이, 살아남은 것은 나의 트라우마다. 아주, 예전부터. 나는 죽음에 인색하다. 그것은 누가 죽으래, 죽으면, 아무 소용도 없어, 왜 나를 남기고 죽어,가 아니다. 내가 살아남음이란 것에 후하지 않은 것은 죽었는데, 그래서 뭐?,와 같다. 나는 그곁에, 해맑고 천진도 난만하시게, 곱고 예쁘게 웃어줄 수 있는, 스크루지도 당해내지 못할 고약한 인색함도 상큼하게 매달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죽음에 대해선 내가 짜증,치밀어하는 것은 '관계' 자체가 좀 다른 패턴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딜라일라 안 선생님 정도의 친분 내지는 관계는 차고 넘친다. 길을 가다 수도 없이 걸려 비걱대는 내 구두굽 소리보다 더 많이. 다만, 전화번호부에 그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헛갈리는 그런 수많은 관계 중에서, 아직 죽은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고등학교 동창과 새터 동기는 사망 통보를 받을 그 즈음엔 일 년에 한 번 정도 해주는 셀룰러폰가볍게하기,행사의 일환으로 내 전화번호부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 위에 대고 삭제 버튼을 눌렀던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자로 사망 통보를 받을 오늘 오전에 딜라일라 안 선생님의 전화번호는 내 셀룰러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무 고민없이 'ㄹ'을 검색했으니까. '라뷰티코아'는 확실히 저장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라뷰티코아는 죽어버리지도 않는다. 예고없이, 혹은 예정없이, 사라져버리는ㅡ망해버리는ㅡ 수는 있어도. 하지만, 확률이 너무 낮다. 내가 다른 헤어샵을 찾아 옮기기 전에, 매출이좋지않아서,라거나 혹은 원장의개인적인주식투자가실패했는데그적자를뷰티살롱의흑자가커버해주지못해서,라는 등지의 이유로 이 비싼 동네에서 이 비싼 임금을 지불하는데도 이 비싸게 잘나가는 '라뷰티코아가 확 망해버리는 것'이 '커리어의 정점에서 난데없는 사고사로 죽어버리는 것'보다도 발생학적으로 더 낮은 확률,이란 말이다. 그러나, 그래서, 나와 딜라일라 안 선생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내가 전화를 넣기 위해 'ㄹ'을 검색했을 때 라뷰티코아라는 이름이 딱 하나만 뜨는 것을 보고는, 안 선생님이 도산점으로 옮기고 난 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으니 그 번호는 당연히 청담 본점일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일 게 너무 확실해서, 이 번호가 연결되면 다시 도산점 번호를 가르쳐달라해야하는거냐,고 쉽게도 짜증을 내고 있을 때, 예약 담당자를 연결해주던 친절한 ARS 목소리의 첫 마디는 '안녕하십니까 라뷰티코아 도산점입니다'였다. 그러니까, 나는 딜라일라 안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내 셀폰에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내가 그녀의 소속이라는 사실만은 정확하게 지켜내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기억을 못하는 어느 때, 어느 무의식에, 라뷰티코아의 이름은 지켜도 전화번호는 바꿔내었던 것처럼. 그래서 짜증이 난다. 이 투명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그녀는 내게 아무런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인색해야만 하는 것인지, 너그러워야하는 것인지, 도무지 정할 수가 없다. 물론 그녀의 죽음이 자살도 아니고 사고사인데ㅡ사실 설사 자살이라 할지라도ㅡ, 나의 처우는 후하든 후하지 않든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을 안다. 다만, 내가 나 스스로에게 그녀의 죽음에 대해 못되게 굴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에 신경질이 스민다. 정말, 죽는다는 것은 짜증스러운 일이다. 길고 긴 백양로를 천천히 빠져나오면서, 나는, 여기저기서 나를, 스치는 사람들에 내, 뮤즈백이 이리저리 치이는 것에 유리조각같은 신경질이 목까지 발칵 치밀어 오른다. 그것을 기점으로, 그녀의 죽음에 대한 정해지지 않는 감정이, 정도를 넘어선 내 방어 기제, 내 우울함으로 대변되는 스트레스에 묻어가도록 방치하기로 결정해버렸다. 그녀의 죽음에 너그러울 수도 인색할 수도 없어서, 당장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짜증스럽고 곤혹스럽고 난감한 내 우울을, 쑥쑥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그속에 그녀의 죽음에 대한 내 감정 자체를 그냥 얹어놓기로 한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 표면적으로, 나는 지금 짜증스럽다. 우울해서든, 자학을 해서든, 신경질이 나서든. 어쨌든, 나는 현재 짜증스럽다. 심지어, 나는 차라리 이런 소식을 들은 지금, 내가 우울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조차 잠시 했다. 그러나 곧바로, 어쩌면 지금 우울해서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아직 자학의 단계에 발바닥을 몽창 집어넣은 것이 아니므로, 아마 후자는 아니라고 싹수머리 없지만 객관적이라고 판단되는 결론을 낸다. 우울해서 죽음에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마 내가 그 인색해했던 죽음,을 스스로 고려해야할 만큼의 일이 될테니까. 그리하여 나는 곧바로 그녀의 죽음에 처음보다 명철하게 인색해진다. 사건의 추이를 더듬어 막바지에선, 어쨌든 이렇다. 그녀가 죽어서까지 고객들을 기억할 것이라던 '천사'의 문자가 다른 문자가 도착하여 다음 칸으로 채 밀리기도 전에 전화를 했는데, 그녀의 수족같던 서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른 선생님을 소개해주겠다 하고, '그녀가 죽어서' 머리를 다듬을 수 없는 내가 화라도 낼까봐 황급히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나는, '유감이다'라는 얘기로 그냥 말을 끊어내는 싹수를 발휘했는데, 내가 못생기게 뾰족을 떠는 것이 아니라면 난 전화선을 타고 내게 흘러들어온 저쪽의 기류가 '슬픔'이나 '불쾌'가 아니라 '전전긍긍'과 '죄송'이었음이 분명하다고 기억한다. 나는 화려하고, 죽음에 인색하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본판이, 본데가, 그렇다. 온전하던 그녀의 죽음보다 라뷰티코아의 도산이 더 내게 치명타인 것이 확실한, 싹수머리다. 그저께 확인한, 8월달에 올려놓은 샤넬 코코카바스백 웨이팅 리스트의 내 이름 앞에 드디어 아무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래서 언제고 입고가 되기만 한다면 바로 내 차지가 될 그 백이 만약 반입 전에 기어이 솔드아웃 상태가 된다면 바로 그것이 그녀의 죽음보다 더 서운할 게, 확실한, 싹수머리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내가 만약 내 밑에 '서버'를 둔다 치면, 내 죽음에 대해 '여러분'들께 '1004'가 남발된 '단체문자'를 날릴 것에 관뚜껑을 부수고라도 일어서겠다고, 연이은 천사님의 문자 두 개에 비웃음을 날리는, 싹수머리다. 게다가, 설상이 가상하게 '하늘나라'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고객' 따위를, 내참, 죽어서까지, '그곳에서 기억'한다는 따위의 문장이 덧붙여진 사망 통보라니, 기필코 무덤을 파헤치고 도로 올라오고 말테다,라고 거듭 다짐하는, 싹수머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가관이 절창으로 그따위 문장실력과, 그따위 언어표현으로도 부족해서, 고인의 프라이드에 대한 겨우 그따위의 배려와, 죽음에 대한 그따위의 너그러워도 그렇게 너그럽기 짝이 없고 후해도 그렇게 후할 수 없는 마음본새로 점철된 아이, 그러니까 디자이너의 자존심으로, 예명이든 유학시절 영어이름이든 어찌됐든 그녀가 고객들에게 고수해왔던 '딜라일라 안'을 어디다 팔아먹고 그딴 단체문자를 받을 사람들의 99%가 아예 알지도 못할 '안미현'을 등장시키는, 그것이 그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고작 그 정도의 마음그릇 아니 뇌용량을 가진 걸로도 부족해서, 불특정 다수가 싸구려 동정을 베풀 기회를 보무도 당당하게 공식적으로 부여하는 '죽음에 대한 공지'보다 개개인이 헤어샵에 들렀다가 혹은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그제야 사실을 듣고 당혹스러워 그냥 부산하게 경망이나 떨고,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통보의 반복으로 야기된 창백한 말투와 덤덤한 표정과 클리셰 덩어리의 문장 구조나 갖추게 되는 것이, 그러니까 저급의 호기심이나 고급의 무심함이 싸구려 동정보다는 더 낫다는 것을 모르는, 아니, 정말, 내참, 그런 것조차 모르는, 고작 그런 수준의 아이가 내 '죽음을 알리는' 역할을 맡는다면 나는 내 관 위에 놓인 흙의 두께가 얼마이든 절대 상관않고 기어이 널뚜껑을 열어젖히겠다고, 다시금 맹세하는, 그런 싹수머리란 말이다. 내가 아는 그녀는, 배든 성기든 동정을 받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했다. 그러나 아무리 순간적으로라도 고객의 예약 캔슬보다 그녀의 죽음이 뒤처지는 호들갑으로 설명되기에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녀는 나긋나긋한 걸음걸이와 눈부신 손동작에 앙칼진 목소리를 가진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내 페이던트 코코카바스백이 그녀의 죽음보다 더 중요하다. 나는 화려,하고 죽음에 인색,하다. 그렇게 생겨먹었다. 본판이, 본데가, 그렇다. 이렇게 살다가, 내 죽음도 화려하고, 사람들은 내 죽음에 인색,하게, 그렇게.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 테니까. 할 수 없다. 나는, 화려하고 죽음에 인색하게, 생겨먹었다 본판이, 본데가, 본디부터. sorry, but I'm a bitch. any, problem? i mean,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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