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란 말을 합리론을 표방하는 이후의 해석[소위 '데카르트' 정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고급 철학 강좌에 등록하고 치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만 자기 존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데카르트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에는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스쿼시를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말에 내포된, 가치 판단이 없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 때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포착했을뿐이다. 불확실한 것을 한 겹씩 벗겨내다가,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만 남기는 방식이었다. 그 한 가지 전제에서 다른 진실들이 소생할 수도 있었다.
사랑의 진정한 기준을 찾는 일도 비슷한 궤도를 따랐다. 회의적인 태도란, 피상적이고 거짓된 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랑의 동기로 규정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누군가 아름답고 부유하고, 지성적이거나 강인해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아름답고 부유하고, 지성적이거나 강인해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상대의 욕망 속에서 찾는 핵심 요소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거나 운이 나쁘면 쓸려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데카르트 역시 맞닥뜨렸지만 고민하지 않았는데, 확실성이든 사랑의 진정한 기준이든 불확실한 것들을 모두 벗겨내고 남는 답이 워낙 특이해서 아주 모호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걸 의심했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이 확실한 사실은 정말 멋진 것이지만, 그것이 진리의 본질에 관해 그에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그는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었을까? 의심할 여지 없이 옳은 말이지만, 지식을 추구하는 데는 소용이 없었다.
사랑의 동기 중 덧없는 요소를 다 뺐을 때, 엘리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육체와 지성과 가진 것들을 제하니, 어떤 사랑할 이유가 남았을까?
데카르트처럼 별로 남는 게 없었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앨리스가 계속 화장품을 사들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中, P.226-227
:: 이미 유행 시류의 거센 격랑을 만끽하고 있는 작가의 책을 천박하고 가소로운 양장본 재판 전집 개념으로 죽 훑어내리는 개인적 취향ㅡ작가의 실재적 가치는 이미 논외로 두고 시작하는 속물 근성을 순순히 인정하자면ㅡ이 선사하는 치명적 오류 내지는 단점이 아니었다면, 설사 한 페이지에 적어도 세 번 이상 '사랑'이란 단어가 나오더라도 보통의 책들에, 혹은 보통에, 열광했을 지도.
당연하잖은가.
나 역시 화장품을 계속 사들이니까.
물론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핵심 고백마저 회의하는 싹수머리지만.